이라샤 中...
주인공 이라샤는 아홉 살의 소녀이다. 찻길이 보이는 언덕에 사는
이 아이는 기차 사고로 네 살 위의 오빠를 잃었다. 아이는 기찻길
에 떨어진 머리끈을 주우려고 기찻길로 올라섰고 그리고 기차가
오는 것을 본 것까지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. 모두들 기차 사고
가 그 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.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슬픔에 겨
운 아버지는 술만 마시고 일도 하지 않는다. 그런 아이를 보듬
던 어머니도 힘에 부칠 때면 낮은 목소리로 한숨처럼 말한다. "차
라리 그때 네 오빠가 살았더라면......." 동네에서 모여 놀고 있던
오빠의 친구들은 축구를 할 인원이 모자란다며 '이시이가 있었다
면'하며 이라샤를 본다.
그런 것들에 지쳐가던 아이는 어느 햇살 좋은 오후에 기찻길에 누
워 기도한다. 자기를 데려가고 오빠를 다시 보내달라고. 하지만
해가 지도록 기차는 한 대도 오지 않는다. 기다리다 지친 아이가
얼핏 잠이 든 사이 꾼 꿈에 오빠가 나타난다. 어려운 말이지만 오
빠는 이제 남아 있는 것들이 자기가 남긴 것이 아니라 새로 주어
진 너의 몫이라는 말을 한다. 잠에서 깬 아이는 집으로 오다가 그
날 마을의 터널이 무너져 기차가 한 대도 오지 않았다는 걸 알게
된다. 오빠가 꿈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어디에선가 늘 자기를 보
고 있을 거라 생각하게 된 아이는 달라지기 시작한다. 아버지가
매일 마셔대는 술병에 술 대신 찻물을 넣어두고 눈물 흘리는 엄마
에게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 오빠의 친구들과 공을 찬다. 시간
이 지나면서 모두 망설임이나 한숨 없이 이라샤를 부른다.
작가는 전후 황폐해지고 자꾸 잃은 것을 돌아보는 사람들의 마음
을 읽었던 것일까? 만화는 끊임없이 옛것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
키기도 하지만 새로운 추억거리들을 만들어낸다. 그리고 그것들은
아무 어색함 없이 자리를 채운다. 잃는 것이 있으면 그 자리를 채
우는 무언가가 생긴다. 추억에 매달려 곁에 있는 것의 소중함을
모르는 것은 스스로를 불행하도록 만드는 어리석음이다. 잃음에도
이유가 있고 그것을 채우는 그 무엇에도 이유가 있다. 새 자리를
채운 것을 인정하는 것이 잃은 것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
는 사람들에게 작고 씩씩한 이라샤는 환한 얼굴로 보여준다. 기꺼
이 잃을 줄 알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을 감사히 받아들일 수 있는
사람만이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.
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이라샤 中