서서히 해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. 이제 슬슬 오늘 하루도 끝나

려 하고 있다. 이 쿠폴라는 6시 20분에 문을 닫게 되어 있다.

독일인으로 보이는 커플이 내 곁에 앉았다. 두 사람은 내 눈을

피해 키스를 나누고 있다. 낯선 외국어가 조용히 리듬을 타고 내

머리 속을 흔들어 놓았다. 그들이 어떤 사랑의 말을 주고받는지 알

수 없었지만, 그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커플로 보였다. 웃

음소리가 행복을 연주하고 있었다.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. 미소를

보내자 남자 쪽도 나를 바라보았다.

"곤니치와."

일본말로 인사했다.

"Bitte."

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독일말로 인사를 보냈다. 두 사람이 푸근

한 미소를 보내 왔다.

"혼자야?"

영어로 남자가 물었다.

"아니, 여기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어."

여자 쪽이, 애인?, 하고 물었다.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, 옛

날 애인이야, 하고 말했다.

"얼마나 기다렸니?"

하고 남자가 물었다. 몇 시간 기다렸느냐는 의미이겠지만, 나는,

10년, 하고 대답했다. 두 사람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.

"10년 전에 5월 25일에 여기서 만나기로 했지."

여자 쪽이 금발을 쓸어 올리며 작게 한숨을 토해 냈다. 이들의

행복을 방해해서는 안 돼, 하고 나 자신을 향해 속으로 외쳤다. 이

런 사적인 일들을 이들에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. 그러나 말

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.

"약속이라고는 하지만, 확실하지는 않아. 슬쩍 지나가는 말로

했을 뿐이야."

"그렇지만 자네는 오늘을 소중하게 여기고 기다렸잖나."

내가 고개를 끄덕이자, 남자는 호주머니에서 네 잎 클로버가 든

작은 플라스틱 카드를 내밀었다.

"뭔데?"

"일종의 부적이지. 작은 선물이지만, 받아 줘."

"사양하지 마세요."

두 사람은 활짝 웃어 보였다. 나는 카드를 받아들었다. 이탈리아

어로, MHMBUONAFORTUNA (당신에게 행복이), 라고 적혀 있었

다.

"받아도 돼?"

여자가 오늘의 태양만큼 밝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.

"응, 괜찮아."

"베네치아에서 산 건데, 이건 자네가 가져야 해."

"그렇지만......"

"MHMBUONA FORTUNA."

독일인 커플은 잠시 나와 함께 앉았다가, 태양이 서쪽 하늘 깊이

떨어져 내리자, 행운을 빌어,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.

네 잎 클로버.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든 작고 작은 클로버가 네

개의 잎을 펼치고 있었다.

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. 건물 옥상이 빛을 반사하고 있다.

역시, 오지 않는 거야,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. 네 잎 클로버를 꼭

잡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.

"쥰세이!"

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. 바람의 장난이라 생각했다. 그러나 내

귀는 그리운 그 감촉을 확실히 느끼고, 또 기억하고 있었다. 뒤를

돌아보았다. 거기에는 그렇게 기다리던 사람이 서 있었다.

냉정과 열정사이 Blu 中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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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osted by Duena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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