셰익스피어의 다락방

Shakespeare & Co.

아주 조그만 다락이 있었으면 했다.

만약 내게 다락이 생긴다면 작은 나무 책상이 있었으면 좋겠고, 그 위에는

컴퓨터가 아니라 타자기가 있었으면 좋겠고, 양 옆에는 빼곡이 낡은 종이

냄새 물씬 나는 아주 오래된 헌책들로 둘러싸여 있었으면 좋겠고, 딱 내

키만한 사이즈의 작고 폭신한 침대가 있었으면 좋겠고, 창문은 빛이 방 깊

숙이 들어오는 오각형 창문이었으면 좋겠고, 고양이가 내 뒤를 어슬렁거

리다 툭 한 번 스치고 지나갔으면 좋겠고...

빨강머리 앤의 벽지가 참 예뻤던 그 다락방, <하울의 움직이는 성> 주인공

소피의 작업실, 그리고 소공녀의 다락방... 그런 방의 주인이고 싶었다.

바로 그런 다락방 같은 헌책방을 파리 센 강 근처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,

난 그 비좁은 공간에서 두 시간 가까이 자리를 뜰 수 없었다. '셰익스피어

앤 컴퍼니 Sharkespeare & Co'. 영화 <비포 선셋>에서 제시(에단호크 분)와 셀

린(줄리 델피 분)이 <비포 선 라이즈> 후 9년이 지나 다시 만난 바로 그곳.

"둘이 정말로 6개월 후에 만났나요?"

빈에서의 9년 전 그날 밤에 대해 자신이 쓴 소설의 홍보차 유럽 순회 중인

제시가 바로 이 서점에서 독자들의 질문을 받는다. 그리고 그의 대답.

"그 질문의 답은 당신이 현실주의자인지 낭만주의자인지에 달려 있죠."

제시는 그 대답을 하며 9년 전 셀린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고, 그 순간 서점

구석에서 웃고 있는 셀린의 모습을 보게 된다.

낡은 헌책들이 저마다 세월의 굴곡처럼 층층히 삐뚤삐뚤 꽂혀 있는 책장

의 책들 틈새 저 너머를 바라보다 보면, 저 틈새에 내 그리움의 대상이 있

을 것만 같고,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련한 바람이 밀려온다

세월이 묻어난 책들에 푹 파묻혀 거꾸로 흐르는 시간에 몸과 마음을 잠시

풀어놓고 맡겨두는 자유로움이 좋았다. 그리고 2층 다락 위로 올라가는

빨간 나무 계단의 입구 철문이 좋았고, 100년 된 빨간 나무 층계의 삐그덕

거리는 소리가 좋았고, 그 위에 잔뜩 쌓인 손때 묻은 동화책들이 좋았고,

안네의 비밀스러운 방처럼 꾸며진 침대 위에 누워 동화책을

뒤적이는 퇴행 같은 그 시간이 좋았다. 2층의 구석진 방에는 철학서가

빼곡이 쏟아질 듯 꽂혀 있고, 그 아래에는 책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넓은

책상 위의 낡은 타자기가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 덩그러니 앉아 있었고,

붉은 소파 위에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다 귀찮다는 듯 잠들어 있었다.

그리고 창가 쪽으로 난 방으로 이어지는 비좁은 통로, 그 바로 위에는 이

문구가 다락과 책 냄새가 그리운 낯선 이방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.

"이곳을 찾은 낯선 이를 괄시하지 마세요. 어쩌면 그들은 먼 곳으로부터

우리를 찾아온 천사일지도 모르니까요"

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 .두번째 파리中

Posted by Duena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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